법무법인 존재 編註
생명윤리법은 배아를 ‘생성’할 때만 부부 서면 동의를 요구하고, ‘이식’ 단계에는 규정이 없습니다. 이혼해도 처음의 동의가 자동으로 철회되지 않아 현행법으로 막기 어렵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민법 제844조 친생추정 또는 인지를 통해 법적 부자관계가 생기고, 양육비·상속권·면접교섭 책임이 함께 발생합니다.
본 글은 노종언 변호사가 한국경제 프리미엄 「가사언박싱」 시리즈에 기고한 「비동의 임신 논란, 생명윤리법 사각지대 드러냈다」(2025.07.11 게재 · 2026.04.28 수정)를 의뢰인 관점에서 다시 풀어쓴 글입니다.
법은 이미 만들어진 생명 앞에서 침묵했다
한 배우의 임신 소식이 드러낸 우리 법의 빈틈
한 배우가 이혼한 전 남편의 동의 없이 냉동 보관 중이던 배아를 이식해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생명윤리법의 빈틈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연예계 화제를 넘어 생명윤리와 가족법, 개인의 출산 자기결정권이 겹겹이 얽힌 문제였습니다.
상담실에서도 이 보도 이후 비슷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두 질문 모두 현행 법체계가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이끌면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개인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그 빈틈을 한 장씩 펼쳐 보여드리겠습니다.
생명윤리법이 규정한 것과 놓친 것
배아 생성에는 서면 동의, 배아 이식에는 아무 조항도 없다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체외수정으로 배아를 생성할 때 부부 양측의 서면 동의를 명확히 요구합니다. 혼인 중 시험관 시술을 받는 부부는 대부분 이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단계, 특히 이혼 같은 중대한 신분 변동이 발생한 뒤의 동의 요건에 대해서는 법률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세상에 불러내는 순간은
비워 두었습니다.
이 공백 때문에 이혼 후 전 배우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배아 이식 행위 자체를 현행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이 금지하지 않은 행위를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공학 기술은 냉동 배아를 수년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배아를 만든 시점과 이식하는 시점 사이에 몇 년이 놓이고, 그 사이 부부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을 법이 미처 상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혼 후 냉동배아 이식, 왜 법으로 막지 못하나
사건 개요와 세 가지 쟁점 (0:54)
법원은 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나
명시적 철회가 없다면 묵시적 동의가 유지된다는 판단
과거 유사 사례에서 전 남편이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청구 기각이었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남편의 최초 동의가 공식적으로 철회되지 않았다면, 병원 측으로서는 묵시적 동의가 계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원이 배아 이식을 시행한 데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 판단이 개인에게 남기는 함의는 무겁습니다.
명시적으로 철회해 두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모가 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현장에서 이혼 협의를 진행할 때 재산분할과 양육 문제는 꼼꼼히 정리하면서, 병원에 맡겨 둔 냉동배아는 논의 대상에 아예 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존재 자체를 잊고 있다가 몇 년 뒤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배아를 보관 중인 의료기관에 서면으로 동의 철회 의사를 전달하고 그 사실을 증거로 남겨 두는 것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조치입니다.
생명윤리법이 놓친 조항, 그리고 묵시적 동의 판례
조항 공백과 손해배상 기각 (0:57)
태어난 아이의 법적 아버지는 누구인가
민법 제844조 친생추정과 300일이라는 기준선
민법 제844조의 친생추정 원칙은 혼인 중 임신했거나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결과가 둘로 나뉩니다.
①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출생: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됩니다.
② 300일을 넘겨 출생: 법적으로 혼인 외 출생자로 분류됩니다.
두 번째 경우에 친생추정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법원이 임신의 기준 시점을 수정이 아닌 착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배아가 만들어진 시점이 혼인 중이더라도, 착상이 이혼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 이루어졌다면 친생추정의 울타리 밖에 놓이게 됩니다.
다만 친생추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 배우자가 공개적으로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힌 경우처럼 자발적 인지를 통해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인지가 이루어지면 아버지에게는 부모로서의 완전한 법적 권리와 의무가 발생합니다.
법적 부자관계가 만들어내는 네 가지 의무
양육비·상속권·친권·면접교섭권이 한꺼번에 따라온다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되면 그다음은 자동으로 뒤따릅니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① 양육 책임: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 책임을 집니다. 어머니가 친권과 양육권을 갖게 되면 아버지는 양육비를 지급할 법적 의무를 집니다.
② 상속권: 자녀는 혼인 중 태어난 다른 자녀와 동등한 상속권을 갖습니다. 기존 자녀들의 상속분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③ 친권·양육권: 이혼한 부모의 경우 협의로 정하고, 협의가 되지 않으면 가정법원 재판을 통해 결정합니다.
④ 면접교섭권: 아버지에게도 자녀를 만날 권리가 인정됩니다.
원치 않는 부자관계에서 벗어나려면 별도의 친생부인의 소를 거쳐야 합니다. 다만 제소 기간과 요건이 엄격해 실제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법이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관계와 책임을 미리 이해하고 대비해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태어난 아이의 법적 아버지는 누구인가
민법 제844조 친생추정과 양육비·상속권 (0:54)
기술은 앞서고 법은 뒤처졌다
부모가 될 권리와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 사이에서
이 사안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행 법체계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유명인의 사생활 문제를 넘어 가족과 동의, 생명의 의미에 관한 기존 법률과 사회적 규범의 한계를 시험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가장 어려운 물음은 두 권리가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데 있습니다.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
냉동 배아 앞에서 두 권리는
어느 한쪽을 반드시 꺾어야 합니다.
한쪽에는 이미 만들어진 배아를 통해 아이를 낳고자 하는 사람의 출산 자기결정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원치 않는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냉동 배아가 가지는 윤리적·생명적·법적 지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도적으로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 배아 이식 단계의 동의 요건을 법률에 명시할 것인지
• 이혼·별거 등 신분 변동 시 기존 동의의 효력을 어떻게 볼 것인지
• 동의 철회의 방식과 시한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법이 정비되기 전까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합니다. 혼인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시점에 냉동배아 처리 문제를 협의 대상에 반드시 올리고, 자신의 의사를 서면으로 남겨 두는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 칼럼을 읽으신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다섯 가지
법무법인 존재
가사 · 상속 · 소년 · 국제가사 전문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인 법률 상담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전문 변호사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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